소액재판 항소가 어려운 이유: 판결 이유도 모르니까
소송가액(청구를 바라는 금액) 3000만 원 이하인 민사사건을 소액사건이라 한다. 적은 돈을 판결하는 것이니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여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a 씨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통해 밀린 임금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기각당했다. 기각이란, 수리된 소송을 종료하는 것으로 원고의 소가 형식적인 요건은 갖추었으나 그 내용이 실체적으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소송을 종료시켜 버리는 것이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이유인즉슨, 증거 부족이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억울한 일일 테지만, 소액재판에서는 판결 이유가 적혀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a씨의 경우는 그나마도 양반인 경우다.
민사소송을 제기할 때 본인이 질 것으로 예상하고 덤벼드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불리하다면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면서까지 소송을 할 것이 아니라, 그냥 합의로 끝내는 게 득이니까.
소액재판의 결과를 받고 나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원칙적으로 소액재판의 판결문에는 이유를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 왜 졌는지 판결 이유를 모르니 억울할 수밖에.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 역시 허무하다. 변론 (판사 앞에서 항변하는 것)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빠르게 끝난다. 빠르면 5분 만에 끝나는 게 소액재판이다. 양측 변론이 끝나자마자 즉시 선고도 가능하다. 모든 것이 판사 재량으로 결정되기에 졌는데 이유도 모르고 나온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간소화된 절차로 재판 과정이 이루어지니, 수 차례 법원에 출석해 미비점을 보완하고 재판을 받는 일반적인 민사소송에 비해 단 1회의 변론으로 결과가 나오고 이유도 기재하지 않을 수 있다. 재판 준비 과정에 더욱 철저히 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국내 재판부의 수는 밀려오는 소송을 처리하기에 현저히 부족하다고 한다. 2018년 1심 민사본안사건의 접수 현황을 살펴보면 합의사건 45,364건 (4.7%), 단독사건 205,146건 (21.4%), 소액사건 708,760건 (73.9%)로 소액사건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소액재판은 다른 민사사건에 비하여 항소 비율이 현저히 낮다. 법원행정처가 발표한 2018년 민사본안사건 항소 현황을 살펴보면 합의사건 판결 건수 26,449건 대비 항소 건수는 14,390건으로 항소율 (54.4%), 단독사건 판결 건수 114,705건 대비 항소 건수는 28,126건으로 항소율 (24.5%), 소액사건 판결 건수 438,842건 대비 항소 건수 16,469건으로 항소율 (3.8%)을 기록하였다. 이유를 모르니 항소가 꺼려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항소는 단지 억울하니 다시 재판을 해줄 것을 청구하는 것이 아니다. 1심 본안소송에서 판단한 논리 및 근거를 반박하고 제출하지 못했던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여 판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원인이 있어야만 한다.
소액심판청구소송 소장을 제출하면 법원에서는 변론기일을 지정하기 전에 원고와 피고 간 서면공방을 진행한다. 원고의 주장을 피고에게 송달하고, 피고의 입장을 들어본다. 피고가 원고의 주장을 반박하면 원고 역시 다시 반박하기도 한다. 그러한 후 재판 일정을 잡는데 이때의 변론 기회를 허무하게 낭비하면 끝이다. 소장을 제출할 때부터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법리적인 판단과 논리에 입각하여, 이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를 빠짐없이 취합해야 한다.
대충 재판을 해서 졌다.라고 생각해도 소용없다. 애초에 소액재판 자체가 그러한 것이다. 소액재판 항소를 하고자 한다면 1심 패소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반박할 수 있는 빼박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또다시 돈 낭비, 시간 낭비,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뿐일 것이다.